고요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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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시리즈를 읽다 감명 깊은 구절을 몇개 발췌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지금은 냉정중입니다만 다시 다녀야죠^^;)

 

 

- 우리가 살다보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다 괴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등산할 때 힘은 들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힘든 것이 바로 괴로움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통증이 다 괴로움이 아니고, 실패와 가난이 다 괴로움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수행의 핵심은 여러조건들로 인해 내 마음이 괴로운가, 괴롭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 지혜라는 것은 자기 내면이든 바깥이든 세상의 흐름을 사실 그대로 보는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가치관은 서로 다 다릅니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남의 생각을 바꾸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할 거다" 하면 당장은 그럴 것 같지만 내일 자고 나면 마음이 또 바뀔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영원한줄 알고 사람 마음이 경계에 따라 바뀌는 줄을 모릅니다. 좀 잘해주면 천생연분 같고 좀 못하면 철천지 원수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뀌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번에는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이 일어나는 구나. 또 철천지 원수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시는 같이 못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렇게 어제 마음하고 오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그냥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보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도 남의 마음도 그냥 그대로 보라는 말입니다.

 

 

- 이생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 하느님 좀 부르고, 절에 와서 관세음 보살 좀 부르고, 절이나 좀 해서 피해보려는 생각을 내는게 제일 문제입니다.  지금의 종교가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면죄부를 팔고 있습니다. 몇백만원 내고 몇천만원 내고 부적을 쓰고 천도재를 해 주면 이것이 다 없어진 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요즘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장사가 더 잘 됩니다.

 


 불법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인연과보의 이치를 배워서 지은 인연은 과보가 따른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아! 내가 과보를 기꺼이 받아야지.' 이런 준비가 되어있어야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과보를 면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경전은 이런 이치를 가르쳐주는 것인데 '어떤 주문을 외워야 과보가 몽땅 없어집니까?'이런 질문이나 하고 있습니다.
주문 하나 외워서 과보를 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종교란 허무맹랑한 얘기나 하고 사기나 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고 공부해 가는게 종교입니다.

- 서암 큰 스님께서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다리가 이렇게 아픈가' 이런 말씀은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이고, 이놈의 다리도 너무 오래 썼다고 요즘 막 데모를 하네" 이러셨어요. 그정도로 부려먹었는데 이만하기를 다행이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냥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끝날때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사는게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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